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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대한민국의 정의

Canavalia 2024. 12. 19. 22:03

정의는 곧 정의이다. definition을 할 수 있는 자만이 justice할 수 있다는 뜻으로 많이 쓰고 있다.

 

용산 전쟁기지를 구경하는데, 발이 끄는대로 이리저리 다녀봤다. 커다란 비행기들이 전시되어있고, 소련에게서 독립하는데 한참이 걸린 라트비아 공화국 참전 용사들 팜플렛도 보다보니, 전쟁이라면 기대하는 커다란 폭음과 그것이 나를 향한 것이 아닐거라는 영화적 음악이 함께 나오는 곳이 있었다.

 

북한의 도발

 

최근 대통령의 계엄령과 관련해서 시끄러운 말들이 어떠한 근거도 없이 교차적으로 들려온다. 소리만 가득한 총성이 상대방의 진지를 흔들지만, 제일 강력한 한 방은 아무래도 쪽수싸움이다. 이제 일단 보수당이 말하면 믿어주던 노인들은 얼마 안 남았고, 진보당이 말하면 일단 믿어주는 척만 하는 거라고 하는 상대적 덜 늙은이들이 많아졌다. 그들은 다리힘도 좋고, 주말에 일하지 않을 노동권리가 있으며, 무엇보다도 보장받지 못한 인정이 고픈 사람들이다. 욕하는 것은 아닌데, 비판거리 없이 칭찬할 대상이라는 것도 아니라는 얘기다.

어쨋든 오늘 얘기에서는 중요치 않으니 각설하고, 북한의 도발 이라는 주제가 얼마나 도발적으로 느껴졌는지 모른다. 모름지기 우리나라 주적으로 일컬어지는 국가는 북한이지만, 문화적 주적은 일본이요, 경제적 주적은 중국과 미국이 번갈아가며 담당한다. 후자 주적의 경우는 헷갈리면 안된다. 나를 울게만 하는 것이 적이 아니다. 나를 웃게 만드는 것이 상대방에게 달려있는데, 그것이 적은 수라면 아무래도 내가 좀 후달리지 않을까.

 

나는 내가 발을 들인 그 주제에 대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지금 스스로가 주적의 도발에 당한 내용을 전시한다는 것인가? 무엇이 목표인거지? 아직도 건재해 있는 주적을 두려워하라? 아니면 이렇게 대단한 도발들을 막은 나를 칭찬하라? 무엇이 되었건 전시관 내부가 단순한 자료로서만 나열되어 있었다면, 내가 좀 단어에 예민했는가 싶었을 것이다.

 

두두두두 하는 소리와, 온갖 전쟁 영화에 나올 것 같은 소리, 그리고 북한을 명확히 나쁜 놈으로, 남한을 명확히 불쌍한 피해자로 그리는 전시물을 보고서는 내 감상이 더 강화되기만 했다. 입구에서 보이던 수많은 북한 도발 명패가 걸린 벽에서부터 느껴지는 압도감은, 남한을 향한 것이 아니라 북한을 향해서였다. 이렇게나 많이 다양하게, 꾸준하게, 성장해가며 남한에 들어왔다고? 뭐랄까, 남한의 지도를 살펴보면, 그 모든 영역 테두리는 북한의 도발 후보로 보였다. 다음은 어디일까 기대될 정도였다.

 

국제사회에서 왕따라고 하는 북한은, 깍두기인 남한보다 나은것 같았다. 핵을 보유하지 않을거라고 약속을 해놓고, 핵을 개발한 북한은 욕은 먹을지언정 무시당하지 않는다. 물론 핵이 다는 아닐텐데, 시작은 핵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김일성 김정일 세대와 다르다고 평가받는 김정은 순서에서 나온 도발의 수와 종류, 그리고 수준은 이전과 판이하게 달랐다. 이건 누가봐도 봐달라고 하는 모양새였다. 내가 이만큼이나 이룩했으니 나를 무시하지 말고 봐달라고 하는 모양새였다. 아무래도 독립운동을 한 할아버지와 흔들리는 왕정을 무사히 이어받아, 어쩌면 통일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고문(핵 개발때와 동일한 방식으로 느껴졌다.)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흔들지 않고서 약점을 보완한, 경제 협력까지 성공적으로 수행한 모양새는, 어쩌면 약자가 약자로써 자각하고 주겠다는 보호를 갖잖게 까내지 않고, 받을 것 다 받고서 더이상 약자가 아닌 순간까지 확실하게 본인들이 정하는 주체적인 국가로 보였다.

어쩌면 대한민국을 정의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북한과 지켜주고 있는 미국인건 아닐까.

에이 아니겠지.

 

 

나도 북한 지도자들이 싫다. 자신들의 이익을 채우느라 그럴싸한 변명으로 돈 빼돌리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기준에 맞지 않으면 아오지 탄광에 보내버리고, 부모를 잘 만나지 못해 힘이 없는 사람들이 굶어 죽어도 신경도 안 쓰는 모양은, 앞의 꽤나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 것과 별개로 지탄받아야만 할 내용이다.

돈 있는 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무지한 사람들을 핍박하다니. 그런데 어라, 이거 어디서 많이 본 패턴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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